공식적으로 참가 신청이 오픈되어 있는 행사들은 많이 다녀봤어도 이렇게 프라이빗한 파티에 일하러 간 건 처음이었다. 급하게 불려 나가느라 무슨 행사인지도 제대로 모르고 갔는데 명단을 받아보니 vip는 이름 들으면 누구나 아는 글로벌 기업의 회장님들이었고 참가자들 또한 유수의 대기업, 로펌, 사립 학교 소속에 유명 연예인들도 몇몇 있었다. 한국에 살면서 현실에서 이렇게 파티 드레스로 셋업하고 오는 행사를 직접 본 적은 없었는데 정말 다들 화려의 끝판왕이었고 귀티가 좔좔 흐르는 분들이었음.
일단 대행업체 안끼고 주최 측에서 다이렉트로 운영을 하는 것 같았는데 제대로 된 업무 분장과 교육도 없었다만 다들 경험 많은 사람들로만 뽑은 거 같았고 이런 일 많이 해봤을테니 눈치와 짬으로 알아서 하라는 느낌이었다. 손님들 한명한명 대면하는 건 알바들이다 보니 다들 그냥 오늘 하루 대놓고 욕 들어먹겠다는 걸 감지하고 일을 시작함. 대행업체 소속으로 왔다면 사전 세팅부터 줄기차게 굴려졌을텐데 뭐 그런 것도 없고 공연 팀들이랑 같은 대기실에서 간식 먹으면서 쉬다가 행사 시작 직전부터 일을 시작했다.
오시는 분들 차례로 등록 도와드리고 배정 받은 테이블 자리 안내, 공식 행사 진행 등등을 하면 됐는데 딱히 업무 분장이 없었음에도 그냥 근처에 있는 아무나, 자기 눈 앞에 닥친 일들을 하다 보니 어떻게 어떻게든 진행은 됐다. 왜 PCO라는 업이 존재하는 지 깨달은 순간이었지만 뭐 딱히 주최 측이 행사의 을이 아니라면, 그리고 인력만 경험자들로 잘 뽑는다면 쓸데없이 돈 낭비하지 않는 현명한 선택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공식 행사 시작 후에는 그들의 네트워킹을 구경하거나 공연을 보면서 호응 유도를 하다 보니 시간이 술술 갔다. 주최가 손님들에게 굳이 잘 보여야 하는 자리가 아니다 보니 임시 인력들에게도 매우 관대한 느낌이었고 나중엔 우리도 중간중간 한 잔씩 하라고 했을 정도로 프리한 분위기였다.
하나 생각이 난 에피소드로, 내가 지금보다 훨씬 어렸을 때 해외 유명 사립 학교의 한국인 커뮤니티 부모 모임에서 일을 한 적이 있었다. 생각보다 저급한 수준과 유치한 기싸움에 놀랐고 그 사이에서도 교양과 품위를 지키는 몇몇 참된 어른들을 보면서 인생 열심히 그리고 똑바로 살아야지란 생각을 했었는데 이 날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저 위치의 사람들도 이런 행사 꼬박꼬박 참석하면서 눈 도장이 됐든 뭐든 네트워킹을 위해 이렇게 노력하는데 나 같은 인간은 몇 배로 더 열심히 살아야겠지라는 마음이랄까. 지루한 현실에 안주하다가도 가끔씩 이런 일들을 하다 보면 동기부여가 되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