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신선 물류센터 허브 알바: 여자가 일해본 현실 후기

예전부터 정 안되면 쿠팡 알바 뛰지 뭐 이런 얘기를 농담처럼 했었는데 쿠팡 알바도 경쟁률이 넘 빡세져서 출근 확정 받는 게 쉬운 게 아니더라. 일단 나는 쿠팡 물류센터가 도대체 어떤 곳인지가 너무 궁금했다. 난이도 극악이라길래 뭐 얼마나 심한가 싶기도 하고 한창 삶이 무료하고 나태해서 그런지 좀 빡센걸 경험해보고 싶었음. 마침 나랑 똑같은 궁금증을 가지고 있는 친구가 있어서 무슨 잠입 취재기자 같은 마인드로 동반 지원을 했다.

후기 찾아보고 좀 괜찮다는 센터들 위주로 지원했는데 역시 뉴비라 광탈했고 신선센터 한 군데서 근무 당일 출근 몇 시간 남겨두고 오후조 근무가 가능하냐는 연락을 받았다. 입고로 지원했는데 티오가 허브만 있다고 허브도 괜찮겠냐는데 여자도 하냐니까 여자들도 많이 한다고 함. 동반 지원한 친구한테 먼저 연락했는데 오케이 했다길래 나도 뭐 알겠다고 했다. 셔틀은 이미 놓친 시간이라 친구 차로 같이 출근.

센터 근방 몇 키로까지 그냥 도로 전체가 주차장 수준이라 주차가 헬이었고 부랴부랴 달려갔는데 입구 지키고 계신 분이 지각이라서 쫓겨날 거 같다만 일단 올라가보라고 하심. 이미 교육이 시작해있었고 사무실로 갔더니 지각이라고 돌아가라 했다. 출근 확정 연락 받고 바로 온 건데 이 시간이라고 연락 온 시간 보여주니까 오늘만 봐준다는 식이었다. 신선센터라서 방한복이랑 안전화 주는 거 착용했고 신규 교육은 1시간 정도 들었다.

교육 끝나고 이동하는데 허브는 나 포함 뉴비 4명 정도였고 일단 듣던 대로 신선 허브는 고인물 천국인 것 같았다. 그리고 이 날 허브에 여자는 전체 통틀어 1명 밖에 없었다..ㅎ 쌉고인물 같아 보이는 아저씨 선배들이랑 같은 구역이 됐는데 진짜 한 명은 초반부터 대놓고 부려 먹음. 하지만 옛날부터 여자라서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힘쓰는 일 빼는 사람들 안 좋아했고 뭐 여긴 똑같이 돈 받고 일하는 곳이니 당연하지만 괜히 그런 취급 안 당하려 더 빡세게 함. 뭐 하여튼 하다 보니 아저씨들이 조금씩 잘해주기 시작했다. 어쩌다 이런 험한 일을 하러 왔냐고 다음엔 출고 가라고 거긴 아줌마들 텃세가 장난 아니긴 한데 그것만 적응하면 일은 매우 편하다고 한다.

일단 신선 허브 업무는 위쪽 레일에서 지역 별로 분류된 프레시백이 내가 맡은 구역으로 내려오면 차곡차곡 테트리스 하듯이 ‘파레트 위에 적재 – 대략 높이 2m 정도까지 차면 랩핑 – 지게차가 빼가면 다시 다음 파레트 세팅’ 이것만 무한 반복하면 됐다. 문제는 개개개빨리. 내가 있던 쪽이 물량 많은 지역들이었던 건지는 모르겠는데 두세시간 정도는 연속으로 와르르 내려와서 숨 돌릴 틈 없었고 그러다 옆에 구역 사람이 소리 지르면 가서 옆에 것도 돕고 파레트 빠질 때쯤 대기 타러 달려가서 다음 파레트 놓고 이러다 보니 방한복 다 벗어던지고 싶을 정도로 땀이 뻘뻘났다. 첨부터 다들 그냥 반팔 입고 있는 이유가 있었다.

초반엔 아저씨들이 괜찮냐 물어보면 “네 생각보다 할 만 한데여” 이랬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쌍욕이 절로 나옴. 그러다 중간에 우리 구역 쪽 아저씨 한 명이 사라진 거 같았는데 웅성웅성 분위기가 심각한 듯 보이더니 내 사수 역할 해주던 아저씨가 다가와서 나지막히 속삭였다.

“우리 오늘 ㅈ됐어^^”

이때부터는 나도 그냥 소리 지르면서 욕하면서 일했다. 몸 뽀개질 거 같은데 계속 안 힘드냐고 물어보는 것도 빡쳐서 나중엔 면전에 대고 “ㅅㅂ ㅈㄴ 힘들어요” 하니까 아저씨들이 엄청 좋아함 ㅋㅋㅋㅋ 사실 일 자체는 체력 싸움인데 중간중간 갑자기 개무거운 백 한두개씩 나오는 걸 키보다 높은 자리에 쌓아야 될 때나 랩핑할 때는 요령이 좀 필요했어서 힘들었다.

그리고 옆 구역에 덩치 큰 남자 애기가 한 명 있었는데 얘는 프레시백이 벨트 밖으로 굴러 떨어질 정도로 쌓여도 아무도 안 도와주고 심지어 내가 도와주려고 하니까 아저씨들이 도와주지 말라고 함. 뉴비들한테 텃세가 있는 건 확실해 보이고 초반에 열심히 하는 태도를 안 보여서 그런건지 뭔지 뭐 할튼 이유는 알 수 없다.

근무 시간은 칼 같은 게 밥 시간 땡 했을 때 내가 하던 거 마저 하려고 손에 들고 있으니까 그거 당장 내려놓으라고 아저씨들이 극대노함ㅋㅋㅋㅋ 저녁 먹으러 갔더니 식당도 아비규환이어서 친구놈 어디 갔는지도 모르겠고 같이 앉는 건 상상도 못할 정도로 한 자리 난다 싶으면 바로 비집고 들어가서 호로록 먹어야 했다. 식당 카페에서 파는 ‘당 떨어짐 방지’라고 써 있는 음료도 사 먹고 밥 먹고 와서는 단체로 국민 체조도 했다.

나중에 듣기론 여기 센터가 비교적 관리자들도 나이스하고 신선이라 상대적으로 일도 편한 것 같았는데 내가 일한 날이 유독 물량 많은 편이었다고 함. 끝나고 새벽 2시반에 옷이랑 출입증 내던지고 친구랑 국밥 한 그릇하고 집에 와서 씻지도 않고 바닥에 누워있다가 기절했다.

결론: 입출고보다 시급 500원 정도 더 받는 거라는데 입출고 배정을 받을 수 있다면 굳이 허브를 할 이유는 없어 보임. 다만 본인 체력이 괜찮고 갠플하려면 허브가 나을 수도? 몇몇 분들은 에어팟 꼽고 노래 들으면서 일하는 것도 봤다. 일하는 요령만 생기면 꾸준히 할 만도 할 것 같은데 그냥 다른 편한 알바들에 비해 시급이 그리 높은 것도 아니라 큰 메리트는 모르겠음. 장점을 꼽자면 나가고 싶은 날만 나갈 수 있다는 거랑 급여 지급이 빠르다 정도. 여튼 인생에 좋은 경험이었다.